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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정보부 창립멤버 조웅 목사의 현대사 X파일
    ★ History Salon/Currents, 정의(正義) 2017. 1. 6. 21:43

    조웅 목사님 이력도 한 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글이 있어 퍼 옵니다.

    작은 언론사의 기사가 펌된 글을 다시 퍼왔어요.

    원글은 작은 언론사에서 작성된 같은데 해당 사이트는 아예 보이진 않네요.


    글 하단박스조웅 목사님 은행 계좌를 적어두었습니다많은 관심이 있기를...


    최신 인터뷰 영상 등 관련 글을 확인하시려면 하단 "조웅 목사" Tag 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여기에도 Tag 복사해둘께요.   


    조웅 목사님 어서 나오셔야 되는데... 언론 정치 등 죄다 한통속으로 썩은 놈들만 있으니 최박게이트 상황에서도 조웅 목사님 석방하자고 말하는 색퀴들이 하나도 안보이네요.  죄다 쌩양아치 색퀴들

    ==> 업데이트합니다. 형은 1년 정도 사신거 같고... 즉 출소하신지 꽤 되신거 같습니다.

    제대로 된 당이 있다면... 바로 조웅 목사님 석방 운동하고 석방되면 당 고문으로 모실겁니다. 그런 당이 없죠...

    통합진보당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또 몰라도... 이정희도 돌아와야 하는데... 이석기도 풀려야죠...

    조목사님은 전남 장성 태생이시더군요. 좋은 고장 답게 훌륭한 인물이 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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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정보부 창립멤버 조웅 목사의 현대사 X파일


    이승만 정권 '암살 청부업자'에 살해됐다 

    김지형 cankjh@minjog21.com 


    백범 암살 배후 신성모, 채병덕, 장은산, 이기붕 일가

    이승만 정권‘암살 청부업자’에 살해됐다


    백범 살해 사건에 개입된 이승만 정권 권력 실세들이‘비밀 유지’를 위해 김창룡, 이기붕의 지시를 받는 암살 공작단 3인방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가공할 주장이 나왔다. 채병덕,장은산, 신성모, 이기붕 일가가 이들에 의해 살해됐다는 것. 이런 주장의 당사자는 3인방과 밀접하게 지냈던 중앙정보부 창립 멤버이자 이른바‘5·16 주체세력’중 한 명이었던 조웅목사. 조 목사의 깜짝 놀랄만한 증언을 연속물로 소개한다. 이번호는제1탄, 이승만 정권기 암살공작의 실체에 접근해 본다. 〈편집자주〉


    조웅(65, 본명 조병규) 목사의 약력을 살펴보면 심상치 않다. 4·19 당시 학생

    운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한 후 이듬해5·16 군사 쿠데타에 학생 신분으로는 유일하게 이른바‘혁명주체세력’ 가운데한 사람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태성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김종필등과 갈등을 빚게되면서5·16 세력으로 부터 완전 이탈하게 된다. 그후 1 9 8 0년 이래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조 목사가 1997년에 쓴《거물간첩 황태성과 박정희·김종필의 커넥션》이라는 책을 보면 깜짝 놀랄만한 현대사의 비사들이 언급돼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박정희와 김종필에 관한 내용부터 이승만 정권기 발생한 여러 사건들에 대한 흥미진진한 주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전부터 이 책에서 조 목사가 주장하고있는 내용들에대한 진위 여부와 근거들이 궁금했다. 마침 지난 10월말부터 몇 차례 조웅 목사를 집중 인터뷰할 수 있었다. 

    위의 책 내용에 담겨 있으나 혼란스럽게 쓰인 주장들을 저자의 증언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김창룡, 이기붕 비밀공작단 3인방의 정체


    1950∼1970년대에 이르는 각종 암살사건과 부정부패사건, 정치사건등의 뒷 이야기와 파격적인 그의 주장은 기자가 감당하기에 버거울 정도였다. 사안별로 근거제시가 부족하여 무리가 따르는 경우도 있지만 현대사에서 논란이 되는 예민한 문제라는 점에서조목사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한다.


    대체로 이승만 정권기에 대한 그의 주장은 이승만의 최측근이자 특무대장으로알려진 김창룡과 경무대(청와대전신) 비서 이기붕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던 부하들의 증언에 기초하고 있다. 조목사는 이들의 실명을 이미 자신의 저서에서 밝힌 바있다. 기자는 이들의 존재에 대해 직접 물어봤다.


    “김창룡의 참모 3인방입니다. 엄○○, 조○○, 최○이죠. 엄씨는 김창룡의 부관을 지낸 자인데 이승만 정권기 모든 비밀을 다 알고 있어요. 비록 대위였지만 김창룡의 모든 심부름을 다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겁니다. 현재 살아 있어요. 72세쯤 되었습니다. 사병 출신으로 군생활을 시작해서 간부후보생으로 진급한 경우입니다. 현재 현대사의 큼지막한 비밀을 움켜쥐고 있는 마지막 생존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두 사람들은 죽었습니까?


    “조 씨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육사 9기 출신인데 김창룡 시절C I C ( 특무대) 행정일을 담당했어요. 최씨는 3인방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인데 말년에 중풍으로 고생하다가 한 3년 전에 죽었습니다. 최씨는 CIC 문관 출신입니다. 문관에도 여러 등급이 있죠. 하사관급, 위관급, 영관급, 장군급이있는데 그는 장군급이었습니다. 김창룡도 자기보다 한 두살 많은 최씨에게 깎듯이‘최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CIC 조직의 부대장, 부부대장을 직접 임명할 정도로 힘있는 자였습니다.”


    이승만 정권기 대통령 다음 가는 권력을 행사했던 김창룡 밑에서 갖은 정치공작을 실행했던 인물들이 이 세 사람이라는 것이다.

    조목사는 김창룡이 1956년 저격당한 이후 이들이 이기붕의 지시에 의해 움직였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조 목사는 이들 가운데 현재 생존해 있는 엄○○과 이미 사망한 최○을 통해 이승만 정권기 비사를 들었다고한다.

    조 목사가 밝히는 이승만 정권기 X파일 중하나는‘암살 커넥션’. 그는 김창룡의 참모 3인방이 신성모, 채병덕, 장은산, 이기붕 일가를 살해했다는 깜짝 놀랄만한 주장을 털어 놓았다.


    “채병덕, 장은산, 신성모, 이기붕과 그의 처 박마리아는 모두 백범 암살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인물들입니다. 이승만은 이들을 없애 뒤탈을 막아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들을 암살한자들이 바로 김창룡 참모 3인방입니다.”


    백범 살해 관련자 차례로 암살


    채병덕은 일본 육사 출신으로 이승만 정부 때 34세 약관의 나이로 참모총장의 지위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는 백범 암살사건의 배후 인물로 항상 거론되는 인물이기도하다. 그렇다면어떻게 채병덕을 제거했다는 얘기인가.


    “전쟁 초기 패전의 책임을 물어 채병덕을 해임한 후 하동지구 전투에 내보내서 죽였단 말입니다. 육군 참모총장까지 지냈던 사람에게 부산병원의 패잔병들 500명을 붙여가지고 전투 사령관이라는 직함을 준 채 전선으로 보냈습니다. 캄캄한 밤 중에 CIC 애들이 가서 죽여 놓고는 전사했다고 위장한 것입니다.”

    장은산 포병사령관은 백범 살해범 안두희의 직속상관으로서 백범 암살을 직접 지시했다는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 장은산은 어떻게 제거됐다는 것인가.


    “백범이 살해된 1949년 6월 장은산은 서울대 병원에 엉터리 환자로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가 있던 병실이 실은 백범 살해를 모의하던 곳이었답니다. 안두희에게 지령을 내린 자가 장은산인데 1951년도인가 술집에서 기고만장해가지고 백범 암살에 대해 떠든 것이 문제였어요. 



    ◀이승만시절 특무대장으로 알려진 김창룡 특무대장


    ‘내가 백범 제거의 일등 공신인데 말이지, 이승만이 나를 이렇게 대접하다니 ’하면서 떠벌린거죠. 이얘기가 김창룡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김창룡이가 ‘안되겠다’ 싶어서 장은산이 탈영기도를 했다며 잡아 들여서 형무소에서 죽여버렸어요.”

    장은산의 죽음에 대해서는 4·19 후 고정훈 구국청년단 대표의 증언이 있다.



    ▶ 4·19항쟁 당시 시위군중에 의해 이승만 동상이 넘어지고 말았다.


    ‘장은산은 6·25때 밀항하려다가 체포되어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중 옥사했다’는 것. 고정훈의 얘기와 일치하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신성모는 백범 살해사건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다. “신성모 죽음에 대해서는 김창룡 참모 3인방 중 한 사람인 엄○○에게 분명히 들은 사실입니다. 자신이 죽였다고 했어요. 신성모는 4·19가 나자 화병이 나서 이화여대 동대문병원에 입원해 있었어요. 그 때 김활란이 와서 간호하기도 했죠. 김활란이 없을 때 김창룡 부하들이 찾아가서 ‘이제 우린 다 죽게 됐다. 같이 독약 마시고 죽자’고 하면서 독약병을 꺼내놓고 신성모와 함께 차례로 마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신성모가 마신 것만 진짜 독약이었다는 것이죠. 그렇게 신성모를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 이승만의 오른팔이었던 이기붕 경무대 비서


    이기붕과 그의 처 박마리아 그리고 두 아들을 포함한 일가는 이승만 정권 몰락과 함께 아들 이강석에 의해 동반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에 대해 그 동안 숱한 논란이 있어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강석에 의한 동반 자살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타살됐다는 설이 제기돼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4·19의 도화선이 되었던 3·15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이기붕에게 덮어 씌우기 위해서 경무대 경호책임자였던 곽영주에 의해 살해됐다는 설만이 개진돼 왔다.


    조목사에 따르면 이기붕-박마리아의 죽음도 백범 살해사건 관련자들을 제거하려는 목적과 관련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게다가 실행한 자들이 3인방이라는 점에서도 기존의 설과 차이가 난다. 즉 이기붕-박마리아 마저 살해함으로써 사건의 진실을 영원히 은폐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조목사의 이런 충격적인 주장은 결국 김창룡 참모 3인방의 증언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이 세 사람과 조 목사는 어떤 관계이기에 3인방으로서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비밀’을 그 에게 얘기했던 것일까.


    암살자 증언대 세우려면 특별법 제정해야


    “국군의 암적 존재‘김창룡 C I C의 3총사’하면 정보기관에 발을 디딘 사람치고는 그 악명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겁니다. 내가그 중에서도 우두머리 격인 최○을 처음 만난 것은 1958년 이승만 자유당 정권 말기였어요. 그 때 흥사단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조 목사는 당시 정치대(건국대 전신)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이었으며 흥사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최씨는 자신의 친구 최계명과 함께 김재순의 소개로 흥사단에 입단했다. 당시 김재순은《새벽》지 주간으로 있었으며 훗날 노태우 정권 때 국회의장을 지낸 인물이다. 김영삼정권 초기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를 통해 흥사단에 입단한 최 씨는 자연스럽게 조 목사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 조 목사의 얘기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가 흥사단에 입단한 것은 딴 목적이 있었습니다. ‘방첩대 중진으로 있다가 자유당 정권의 횡포가 심해지자 양심적인 단체에 몸을 담아보려고 했다’는 애초의 얘기는 거짓말 이었습니다. 자기의 상관이었던 김창룡을 저격한 허태영 대령이 바로 흥사단 단우였기 때문에 도대체 흥사단이란 단체가 무슨 단체인지 염탐하려 했던 것이죠. 또 반 이승만계열 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빼내서 독재정권에 아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최씨와 알게 되면서 조목사는 자연스럽게 방첩대 관계자들과 만나게 됐다고 한다.


    “5·16쿠데타 당시 CIC 백운상 부부대장도 만났는데 조○○은 그 때 백운상의

    정보처장으로 있었고 엄○○은 보좌관으로 있었단 말입니다. 엄○○은 김창룡

    이 죽은 후 소속은 CIC였지만 출근은 당시 ‘서대문 경무대’로 불리던 이기붕

    의 사저로 했어요. 이기붕의 정보담당 비서관이었죠. 사복으로 근무했습니다. 

    이기붕의 오른 팔 역할을 했죠. 그런 자들과 그 때 부터 알기 시작해서 저도 

    그들과 함께 자주 C I C를 들락거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들과 인간적으로 친해

    졌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이승만 정권기 비사를 많이 듣게 된 것입니다.”


    3인방과는 5·16 후에도 계속 만났습니까.


    “그렇죠. 그 때뿐이 아니라 최○이는 죽기 전까지 계속 만났고 엄○○이는 최근엔 만나지 못했지만 쭉 만나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친해지면 자기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겠지만 그런 어마어마한 일들을 쉽게 얘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죠. 그런데그 사람들 입을 열어야 현대사의 진실이 밝혀진다는 생각에서 의식적으로 집요하게 물어봤죠. 그리고 그냥 물어봐서는 안됩니다. 술자리에서 슬슬 얘기를 꺼냈죠. 이 자들이 또 술이 아주 셉니다. 어느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옛 이야기하면서 추켜세우면 그때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자기 자랑삼아서 말이죠.”


    그런 상황이다보니 안타깝게도 조 목사는 3인방의 증언내용을 꼼꼼히 기록하지 못했고 녹음은 더더구나 하지 못했다. 그저 열심히 기억 창고에 저장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조목사는 3인방중 생존해 있는 엄씨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가령‘현대사 암살 사건 재수사를 위한 특별법’ 같은 것이다. 본인이 보고 관여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험과 증언을 대신 증언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깊이 배인 호소다.


    조웅목사에 의해 열리기 시작한 현대사의 판도라상자. 다음호에는 그가 직접 체험한 박정희정권기 비사를 소개한다.



    [조웅 목사 약력]

    1936년 전남 장성군 출생

    1950년 9월 광주 숭일중학교 재학중 학도지원병 입대( 1 1사단 2 0연대)

    1957년 육군 632 포병대대 군복무 마침

    1958년 건국대 정외과 입학

    1959년 기독학생회 부회장, 기독교 단체 IVF 임원 역임

    1960년 3월 공명선거추진위원회 전국학생 중앙위 의장, 민주주의 사수 전국 학생투쟁위원회위원장

    4월 자유당 퇴진 유인물 제작 살포 중 내란죄로 구속, 출감


    1961년 5월 5·16쿠데타 참가  5월중앙정보부창설서울지부근무


    1963년 2월 황태성 사건 미국에 제보, 중앙정보부에 구속 사형 구형, 15년형 확정. 

    같은해 1 2월 민정이양 특사로 출감


    1979년 김재규 구명운동. 고문, 테러당함

    1984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목사 안수

    1996년 반군사독재민주화운동 군출신 정치범 중앙회 회장


    저서 :《인천상륙작전》(1987), 《거물간첩 황태성과 박정희·김종필의커넥션》(1997) 등

    from http://yiwu114.co.kr/mbc/board.php?board=kkkinformation&page=2&sort=hit&command=body&no=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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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 입수된 정보를 반영합니다.


    정윤회 폭로 조웅 목사 출소했는데 어렵게 지내신답니다. --- 2014년 12월

    http://www.82cook.com/entiz/read.php?num=1931515


    한석현님 글 - 부도덕한 정권의 적반하장을 고발한다 --- 2015년 10월

    http://thesisaviewtimes.com/bbs/board.php?bo_table=colum49&wr_id=358


    조웅 목사님은 예전에 현장 긴급 체포후 1년형을 받으신것으로 같고

    출소후 어렵게 고시원을 전전하시며 생활을 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석현님 블로그글에 조웅 목사님 은행 계좌번호가 있더군요  

    박근혜의 국헌 문란 행위를 고발한다 ( 2016년 6월글 ) >

    http://blog.hani.co.kr/hsh012/


    조목사님 실명 계좌 라고 합니다.

    국민은행 041301-04-244127 조웅

     (원래 이름 조병규에서 개명하셨다고 합니다)


    혹시나 가짜 계좌 정보일까 싶어서 한선생님 블로그를 신중히 검토해봤는데

    조웅목사님과 친분 있는 분이 맞는 것으로 저는 확신이 가더군요.


    제가 촉이 좋습니다만...

    혹 가짜 계좌 정보라 해도 제가 책임지는거 같은건 전혀 아니니 알아서 판단하셔야 할 부분입니다.


    "저는 그저 조웅 목사님의 인터뷰를 보고 그 기개와 용기에 감동을 받은 개인일 뿐이며

    후원과 직접적인 관계가 전혀 없습니다. 혹 저 계좌가 다른 사람의 계좌라해도 저에겐 어떠한 책임도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저처럼... 저 계좌가 조웅 목사님 계좌임이 확신이 간다면... 후원에 관심과 사랑을 가져주셨으면 할 뿐입니다.

    제가 능력이 있어 많이 넣어드리고 다른 분들 기대를 안해도 되면 좋겠지만... 

    저도 소액이나 기부할수 있는 여건이라서요.  외면하지 않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를 희망해봅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작게나마 후원해드렸을텐데... 늦었지만 이제라도 후원할수 있어서 마음에 짐이 좀 덜어지더군요.

    저는 2017년 새해 첫날 입금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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