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은하철 막차를 탄 남자 ─
    ♬ Art Salon/자작시(詩), 짧은 글 2014. 5. 30. 13:16

    음악 플레이하고 읽어보시길.. 그냥 음악만 감상하셔도 좋구요



    은하철 막차를 탄 남자



    그날 그를 마주쳤다..


    그날 그는 은하철 막차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양복의 안쪽 포켓에서 껌 하나를 꺼내더니


    능숙한 솜씨로 눈 깜짝할사이 은박지 하나와 녹색빛 종이, 두꺼풀의 옷을 벗겼다

    ......


    우물짝 주물쩍 주물짝 우물쩍

    처음 만난 여자앞에선 우물쭈물 어찌할 바 모르는 그일지도 모르지만

    껌 하나만큼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신감 넘치게 씹는군

    때늦게 도착한 지하철에 대한 화풀이인지도...


    그렇다 그 껌은 그저 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런지도 모른다


    겨울을 앞 둔 마당에 호쾌하게 찬 공기를 뿜어내는 철면피 에어콘에 대한 맞불작전이다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종종 놀란듯이 졸음을 깨어 내릴듯하다 스르르 눈이 감기곤하는

    초행길에 오른듯한 30대 여인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다


    막차는 질주한다 절컹절컹 절컹절컹

    그는 으깨듯이 껌을 씹는다 으극으극 으극으극


    혹은 그 여인을 세 살 가량 늙게 보이게 하는 눈가의 주름에 대한 적개심이기도 하다


    남자의 복수를 당해내지 못했는지 입속의 껌이 너덜해진 거 같다

    씹을때 턱의 각도를  좀 바꾸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수도 있고


    한 곳에 깊이 고정된 시선

    지구를 바라보는 걸까

     

    너 언제부터 저리도 파아란 빛이었느냐...




    가슴팍에 손을 넣더니 껌을 통째 꺼낸다

    요번에도 눈깜짝할사이에 남은 껌들을 모두 홀라당 알몸으로 만들어 낸다

    어쩌면 그는 껌 만드는 유명 제과회사의 연구소 소속이거나

    영업부 사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참, 그 회사인가?

    그렇다면 무려 4년 연속 꼴찌를 달리고 있는,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프로야구팀을 떠올리며

    투자에 게으른 그룹 회장을 씹어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거걱 껌을 구겨넣는다  제각각인 토막수염에 긁혔는지 손바닥을 잠시 내려다본다

    하얀 손금을 수욱 건성으로 훑는 것이 꼭 남의 손을 보는 듯하다



    다시 한 곳에 눈길을 둔다


    너무 멀리 온 건 아닐까 ...




    막차는 질주한다 절컹절컹 절컹절컹

    그는 이제 쪼개듯이 껌을 씹는다 쩌억쩌억 쩌억쩌억


    속옷이 보일듯한 아스라한 스커트차림의 풋내나는 여인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인가

    스트라익 혹은 볼? 여자의 반응이 없다  볼인가 보다


    도대체 껌을 몇 통이나 구겨넣었는지는...

    분명 그도 모를 것이다.  씹는 것도 정신 사나운데 세어볼 겨를까지 있겠는가

    아무튼 덥수룩해진 수염


    앞을 지키던 여인이 눈을 꿈벅꿈벅 하더니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린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인도 뒤쫓아 내리고

    두꺼운 뿔테를 쓰고 낡은 잡지를 보던 청년 하나도 가방을 내팽겨둔채

    풋여인의 꽃무늬 팬티에 홀린 듯 꽁무니를 쫓고

    청년의 베이지색 랜드로바를 붉은색 니트가 뒤따르고

    출렁거리는 붉은 니트를 이어 굽나간 하이힐이 뛰쳐 나가고...


    비워진 좌석들은 껌을 씹은데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른다


    순간 스피커가 찢어지도록 나오는 방송

    다음역은 999호의 종점  R역 입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하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입을 멍하니 벌린채로 있다.

    그렇게 씹었으니 턱이 얼얼할 때도 되었을께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열심히 껌을 씹었다는 것을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껌을 씹은 것만은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역은 999호의 종점  R 역입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하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보니 그의 눈동자에 동요가 일고 있다.

    초점을 어딘가에 맞추려고 하지만 도저히 안맞는다는듯한  갸우뚱한 표정


    왜일까... 무엇에인가 확고해보이던 자가 저토록 흔들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는 이십여년 전에 들었던 방송을 떠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역은 대화, 대화역입니다. 내리고 가시는 물건은 없는지...

    다음 역은 아알, 아알역입니다. 내리고 가시는 물건은 없는지...

    아알아아알... 아아대화아아아알.......

     

    허전한 객실,  그 남자와 함께 남는 메아리...

     

    이 우주는 은하수때문에 더 아름다와 보이는 걸까

    암흑의 빈 공간때문에 더 아름다와 보이는 걸까

     

    차창에 어린 그의 눈빛은 주홍색임이 분명하다

     

    콰아앙 닫히는 문

    텅 빈 은하철

    두두웅 두두웅

    시퍼렇게 울리고

    울리고 울리고

     

    그의 행선지는 애초엔 종점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종점이었을런지도 모른다.


    2004.11.14

    jeeta..





    위의 음악은 銀河鐵道 999 OST 

    惜別そして未知への憧れ ( Fatal Parting & Yearning for the Unknown )

    석별... 미지...정?


    은하철도 999 OST 중

    은하철도 999 작품의 분위기와 가장 어울리는 곡 이라고 생각해요


    '♬ Art Salon > 자작시(詩), 짧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음 달빛 음악 잠잠 ─  (0) 2014.12.19
    ----=<(@  (0) 2014.06.09
    낙타(들) 2 ─  (0) 2014.06.09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