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예술이란 무엇인가?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이 붙은 하얀 변기를 파리의 갤러리에 전시하면 그것은 전위이지만 50년 뒤 과천 현대 미술관으로 옮겨 와 전시하면 그것은 더 이상 전위가 아니라 고전이 된다.
1990년 겨울, 600페이지에 달하는 어떤 이상한 장편소설 한 권이 한국 문단에 갑자기 던져졌다. 당시 젊은 작가들 사이의 아이콘이었던 장정일의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 이후 찾아온 신선한 충격이었다.
문학사는 때때로 그렇게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과 작가의 등장으로 인해 풍요로워지는 법이지만 불행히도 그 시절 한국 문단은 프랑스에서 누보로망을 연구하다가 돌아온 저 기이한 작가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을 충분히 수용하고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지적이지 못했다. 정작 <경마장 가는 길>에 주목하고 열광한 것은 게으른 문학 전문가들이 아니라 예민하고 정직한 문학 팬들이었다.그 당시, 아직 영화의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인 문학의 시대였다고는 하지만 순수문학으로서는 드물게 상당한 부수가 팔려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작품은 또한 하일지가 직접 쓴 각본으로 장선우 감독 손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경마장 가는 길>은 주인공 R이 5년 반의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4개월 반 동안 문화적 이질감과 혼돈에 휩싸여 지내는 이야기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R은 프랑스에서 자신이 대신 써 준 박사논문을 들고 먼저 귀국해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 애인 J와 여관방을 전전하면서 치정과 불화로 인해 골치를 썩인다. 그런 한편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아내와 이혼하고자 하지만 그것마저도 쉽지가 않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일체 배제하고 오로지 객관적인 태도와 시선을 견지하면서 블랙코미디를 구사하고 있는 <경마장 가는 길>은 작품 자체로도 무척 묘한 재미가 있는 소설이지만, 서구 모더니즘의 극단과 전통에 정확히 위치한, 유의미한 소설이다. <경마장 가는 길>이 딛고 선 것은 바로 카뮈 이후 누보로망으로 이어지는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의 전통인 것이다.
현대성이란 현실에 대한 존재의 의심에서 비롯되며, 그 시점부터 현대문학은 무엇에 대한 정답이 아니라 어떻게라는 질문이 된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자기 어머니의 죽음이 어제였는지 오늘이었는지를 의심하고 햇빛 때문에 아랍인을 해변가에서 쏴 죽이듯이 R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귀국하는 동안 시간과 존재의 모호함과 불가해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우리에게도 소설이 없지는 않았지만 현대소설이라는 형식은 전등이나 자동차처럼 서구에서 만들어져 우리에게 온 것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세계인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형식 속에서 실현하고 실험한다. 우리가 단지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원할 뿐이라면 아무나 아무렇지 않게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아무것이나 버젓이 현대소설이라 불릴 수 있겠지만 만일 예술과 철학의 대상인 진정한 문학이라면 문장과 메시지, 그리고 구조에 대한 고뇌가 현대소설에 합당할 만큼 갖추어져 있어야 할 것이다. 요즘 우리가 읽고 있는 한국 소설이라는 것이 정말 현대소설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반성의 기준으로 <경마장 가는 길>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소중하다. 문학 전문가들이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현대소설 축에도 들 수 없는 것들을 위대한 작품이라고 속이는 한, 향후 대학원 문학 전공자들마저 무협지와 성경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경마장 가는 길>이 불온한 전위의 운명을 갖고 태어날 즈음, 한국 문단은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 휩싸여 있었다. 그 허울 좋은 선무당 놀음을 하다가 우리는 1990년대를 잘못 보내고 말았으며 그 대가를 2000년대에 와서 톡톡히 치르게 되었다. 대책 없는 상업주의로 인한 진정성의 상실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작아진 문학의 체구뿐만이 아니라 문학의 육신이 가치와 양심을 상실하고 문학 팬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게 되었다는 것이다.
K라는 이니셜이 카프카의 것이라면 R은 한국 문학사에 남은 하일지의 붉은 이니셜이다. <경마장 가는 길>에게 정당한 문학적 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문학을 치유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과거의 불온한 전위를 오늘의 고전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젊음의 힘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문화라고 부른다.